[Vol.12] 기술, 사람을 돌아보다
기술, 사람을 돌아보다
최호섭 ([email protected])
디지털 칼럼니스트
새로운 기술에 대해 기대하고,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삶에 이전과 다른 변화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대변되는 기술 발전의 목표는 결국 사람에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술은 과연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에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밤을 새워가며 지켜보던 미국 IT 기업들의 개발자 컨퍼런스, 그리고 CES나 MWC로 대표되는 전시회는 여전히 가장 최신 기술이 소개되는 자리지만 그 관심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줄어들고 있다. 단순히 ‘혁신이 없다’는 말로 표현되지만 사실 최근의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또 구체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와 혁신이 잘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이 우리와 그만큼 멀리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 그리고 멀어지는 사람과의 거리
돌아보면 기술들은 그리 가까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멀어져 간 게 사실이다. 친절하지 않았다. 기술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멀어질수록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어렵고 불확실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불안감을 만드는 비즈니스다. 두려움은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고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5G, 4차 산업혁명 등 기술이 어렵고 개념적일 때 불안은 더 커진다.
기술이 사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목표는 신기한 것이 아니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편리한 삶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기술이다. 그 틈을 좁힐 필요가 있다.
기술에 가장 예민한 IT 기업들도 이를 알고 있다. 2019년의 기술 흐름은 드디어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클라우드, 가상현실, 5G, 반도체 등 그동안 쏟아 놓았던 수많은 기술이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목표와 방향성을 이해하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것을 빠르게 쏟아내고 사람들의 반응을 중요하게 살피는 구글을 돌아보면 흥미롭다. 구글은 개발자 컨퍼런스인 구글I/O에서 ‘모두에게 쓸모 있는 구글을 만들 것(Building a more helpful Google for everyone)’이라고 발표했다. 큰 의미가 있나 하고 볼 수 있지만 쉽고 명확한 비전이다. 새로운 기술들의 의미를 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구글이 쏟아놓은 것들도 이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구글이 공개한 ‘라이브 속기(Live transcribe)’는 켜 두면 음성 인식 기술을 통해 말을 알아듣고 이를 글자로 받아 적는다. 단순한 STT(Speech to Text) 기술로 볼 수 있지만 사실 이를 효과적으로 해주는 서비스는 이제까지 거의 없었다. 정확도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기술은 구글에 가장 쉬운 것 중 하나다. 그동안 구글 어시스턴트를 비롯해 오토ML 등 많은 곳에서 음성 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했다. 받아쓰기는 구글에 기술적으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이를 꺼내 놓지 못했을 뿐이다. 그 생각의 전환이 바로 사람을 돌아보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시 보는 ‘혁신’의 의미
바로 1년 전인 2018년 구글은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기술을 이용한 ‘듀플렉스(Duplex)’를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따라 적절한 답을 한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이 기술은 음성 인식, 문장 해석, TTS(Text to Speech) 등 대화와 관련된 온갖 인공지능 기술을 품고 있는 결정체였다. 이 기술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컴퓨터가 너무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적잖은 불안과 불편함을 느꼈다. 위협적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기술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사람과의 거리는 그만큼 더 멀어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라이브 속기는 너무나도 단순한 기술이지만 그 정확도가 높아지고, 쓰기 쉬워지면서 ‘쓸 만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만큼 가깝게 쓰이고 있다. 구글은 최근 이 라이브 속기에 번역 기술을 더 해 실시간 번역 기술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음성인식, 번역 등 구글이 오랫동안 다져왔던 기술이고 너무 쉬운 기술이지만 간단한 조합만으로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스마트폰, PC 등 우리가 쉽게 접하는 기술들만 봐도 이 흐름은 쉽게 나타난다. 최근 안드로이드와 iOS를 비롯한 운영체제의 방향성은 새로운 기술을 더 하기보다 경험에 더 집중하고 있다. 기존의 기능들을 더 원활하게 쓸 수 있도록 가다듬어서 사용성을 높이고 스마트 기기를 더 안정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시지 앱을 더 편하게 쓰고, 음성 인식의 정확도와 활용도를 높이는 식이다. 그 기술은 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으로 나타난다. 애플은 음성으로 맥을 다룰 수 있도록 보이스 콘트롤을 향상했고 구글도 발음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들의 목소리나 움직임을 머신러닝으로 학습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해주는 기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한 고민도 지속해서 고민되는 주제다. 안드로이드의 디지털 웰빙이나 iOS의 스크린 타임처럼 사용 습관을 보여주고, 화면을 아예 흑백으로 만드는 등 새로운 기술들로 해결되고 있다. 더 많이, 오래 쓰게 하는 것이 기술과 비즈니스의 목표가 아니라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건강하게 쓰느냐로 관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술의 본질적 목표, ‘사람’
2019년 가장 큰 기대와 실망을 샀던 기술은 단연코 5세대 이동통신이다. 국내 이동통신사들과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5세대 이동통신을 서비스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4월 3일 사실상 상용 서비스는 아니지만 각 통신사가 선별한 셀러브리티들을 대상으로 제한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5세대 이동통신을 서비스하는 국가가 됐다. 지표도 나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스마트폰들의 절반 가까이는 5세대 이동통신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다.
하지만 5G는 우리 가까이에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현장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 속도를 내기는커녕 잘 터지지 않거나, 이 때문에 배터리 소모가 더 빨라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제까지 망 설비 초기에 3G나 LTE도 비슷하게 겪었던 일이긴 하다. 하지만 5G는 너무 서두른 느낌이 있고, 무엇보다 LTE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5G는 차세대 IT 기술의 밑거름으로 꼽혀 왔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모든 기술이 바로 5G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현재 5G는 그저 ‘조금 더 빠른 인터넷망’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이 썩 좋지 않다. 결국 공급자들의 의도와 달리 적지 않은 이용자들은 지난 한 해 동안 더 비싼 요금을 물면서도 5G를 끄고 썼고, 기본 약정 기간이 끝나면서 5G 가입을 해지하고 LTE로 넘어가는 움직임도 있다. 막대한 투자와 기대로 시작했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기술이 된 셈이다.
물론 5G는 초기 단계고, 앞으로 새로운 기술이 더 많이 개발될 것이다. 네트워크는 기반 기술이기 때문에 황무지에 가장 먼저 깔리는 기술이라는 변명도 해 본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기술이 한 번 이용자들과 멀어지면 다시 그 간극을 좁히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기술의 발전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유와 명분은 더 필요하다. 사람이 중심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의 민주화, 프라이버시, 기술의 윤리 등 세상은 기술만큼 그 주변의 환경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하는 방법이 고민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기술의 목표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