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CES 2020 서비스화 되는 모빌리티
CES 2020 서비스화 되는 모빌리티
최호섭 ([email protected])
디지털 칼럼니스트
CES는 가전 쇼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또 하나의 모터쇼’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이 전시회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자동차다. Consumer Electric이라는 가전의 영역이 자동차로 확장된 것도 있지만, 자동차 역시 엔진 중심에서 IT와 서비스로 서서히 가치가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CES 역시 자율주행,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안전장치, 연결성 등 그동안 이 전시회를 통해 발전해 온 기술들이 전시됐다. 어떻게 보면 ‘지난해에 봤던 것’이라고 흘려 넘길 수도 있다. 그동안 자동차와 IT 업계가 집중했던 기술들은 대부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가장 어려운 기술로 꼽히는 자율주행 역시 차근차근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새롭나’라는 질문에는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하기가 곤란한 게 사실이다.
자동차는 자율주행, 연결, 모빌리티 서비스 등 CES의 중요한 이야깃거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기술 진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보다 상용화, 그러니까 우리 앞에 현실로 어떻게 놓일 것이냐에 있다. 특히 이동에 대한 변화는 단순히 이동수단에 더해지는 기능이나 형태가 아니라 이동 방법이 달라지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커넥티드 차량, 자율주행, 에어택시 등 기업 하나가 온전히 풀어낼 수도 없고, 개개인이 이동수단을 소유하고 운행, 관리하기에 어려워지는 형태들도 제시된다.
결국, 모빌리티는 하나의 플랫폼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되고, CES에서 선보인 기술 역시 ‘모빌리티 서비스’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곧 스마트 시티를 비롯해 승차공유, 차량공유 등 기존의 모든 이동 방법에 대한 시스템과 가치관, 문화의 변화로 이어진다.
모빌리티의 서비스화, 차 판매가 비즈니스인 시대 지나갈 것
현대자동차는 전시 부스에 차량을 없앴다. 전기차도 없고, 자율주행 차량에 관한 이야기도 빠졌다. 대신 에어택시용 드론인 ’S-A1’과 개인용 이동장치가 전시됐다.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공항 역할의 허브도 함께 공개됐다. 전통적인 이동 방법 대신 근거리는 공간 형태의 무인 자동차를 이용하고 허브에서 에어택시로 갈아타 수십 킬로미터 단위의 거점을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후에는 다시 무인 자동차, 혹은 개인용 이동장치 등으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의 이동은 단번에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장 지하철만 해도 갈아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가 이뤄지고, 여기에 버스로 최종 목적지를 세분화하는 식으로 대중교통이 구성된다.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대중교통 환승 시스템’이 요금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현대자동차 역시 전기차와 자율 주행 차량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동시에 미래 이동의 형태를 단순히 자동차의 진화 이상의 것으로 보고 있다. 차량의 상품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차량을 개개인이 소유하지 않는 사회적, 기술적 흐름도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기업들도 이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서비스로서의 이동수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대신 ‘드론’을 전시했다. 비즈니스가 모빌리티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현대자동차는 어떻게 드론을 개발했을까? 이 에어택시는 어떻게 운영될까? 아니 당장 현실화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현대자동차의 S-A1은 이 많은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이 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에어택시는 우버와 협력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정확한 개발, 설계 과정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드론의 형태는 우버의 에어택시 비즈니스를 개발하는 ‘우버 엘리베이트’가 내놓은 레퍼런스 디자인과 닮았다.
우버 엘리베이트의 에릭 앨리슨 대표는 “현대자동차와 협력을 통해 우버의 기술을 공유하고, 동시에 현대자동차의 우수한 양산 능력을 기대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우버는 오랫동안 드론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고, 이를 플랫폼 화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리고 2020년부터 제한된 환경에서 시범 서비스도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해 CES에서 공개됐던 벨의 에어택시 드론도 공개됐다.
이 에어택시 서비스는 꽤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우버는 에어택시 기체나 드론이 뜨고 내리는 공항 역할을 하는 스카이포트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현재 자체 차량 없이 승차공유 서비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플랫폼 안에서 각 기업이 드론과 스카이포트, 또는 관련 인프라를 갖고 비즈니스에 참여하고, 우버는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항공 기술 표준화와 규제 정착도 있다. 우버는 관련 기술을 오픈소스처럼 개방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의 참여로 대량생산과 함께 많은 드론이 생태계에 들어오는 것을 노릴 수 있다.
물론 아직 에어택시는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다. 기술과 규제,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규모의 성장과 확산을 바탕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빠르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 완성차 업체 역시 차량 판매보다 안정적인 모빌리티 서비스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이동보다 공간이 중심이 되는 모빌리티
토요타의 ‘e-팔렛(e-Pallet)’은 CES에서 꽤 인기 있는 콘셉트다. 토요타는 지난 2018년 CES에서 이 콘셉트 차량을 처음 발표했다. 당시에는 완성차를 중심으로 한 자율주행이 주목받았지만 토요타는 자율주행을 전제조건으로 극단적인 차량 형태를 공개했다. e-팔렛은 미니버스, 혹은 옛날 전차처럼 생겼지만, 베이스 차량은 내부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 마치 빈방을 떠올리는 구조다. 심지어 운전과 관련된 장치들도 생략됐다.
토요타의 e-팔렛. 전기 기반의 자율주행 차량에서 공간을 강조한 첫 콘셉트다.
첫 공개는 2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많은 기업들이 이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듯 비슷한 제품들이 나왔다.
토요타의 아이디어는 자율주행의 미래가 단순히 현재 차량에서 운전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운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율주행 기술이 안정되면 굳이 차량에 운전석을 둘 필요도 없고, 전통적인 형태의 시트를 배치할 이유도 없다. 하나의 움직이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시 e-팔렛은 이 공간 안에 다양한 서비스를 상상했다. 움직이는 옷 가게나 푸드트럭뿐 아니라 무인 택배 차량이 제시됐다. 더 나아가 움직이는 병원, 식당, 호텔 등 다양한 콘셉트가 공개됐다. 달리기 성능이나 디자인 등 기존 자동차에 기대하는 가치관과 정 반대다. 대신 토요타는 공간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이 아이디어는 꽤 괜찮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LG전자, 보쉬 등의 많은 완성차 기업, 혹은 전장 기업들이 e-팔렛과 비슷한 형태의 차량을 공개했다. 이 차량은 운행 그 자체보다 이동하면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차 안에서 무엇을 할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또한, 물류처럼 차량 내 공간을 극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영역도 있다.
전장 기업이 보쉬도 달라지는 자동차 형태에 관심을 보였다.
미래 중심이 될 이동 수단 중 하나로 이 박스카를 내다보고 있다는 의미다.
서비스 공간의 이동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물리적으로 공간이 필요한 주문형 서비스의 형태에도 변화를 끼칠 수 있다. 현대자동차도 이 차량을 PBV(Purpose Built Vehicle)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목적에 맞춰 설계되는 차량이라는 의미다. 이동보다 공간의 목적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 서비스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금은 병원 외 진료가 제한되고 있다. 이는 제도적인 부분도 있고, 동시에 복잡한 의료 장비 등 물리적인 한계도 있다. 공간 중심의 차량이 대중화되면 장소와 관계없이 구급차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이동식 병실도 고민해볼 수 있다. 의료 서비스의 ‘온 디맨드(on demand)’가 이뤄지는 것이다.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하자면 주문을 위해 찾아오는 프라이빗 쇼핑몰이 제시될 수도 있다. 서울 도심의 야경을 보면서 둘만의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동식 레스토랑도 가능하다. 침대 열차 칸처럼 숙박하면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이동식 호텔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안전이 확보된다는 조건이 따라야 하지만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 서비스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차량’, 그리고 ‘이동’이 바라보는 미래
결국, 차량의 역할 중 하나는 서비스다. 그동안의 이동 수단은 이동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방법과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들이 운영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상용화, 현실화 등의 접근으로 이어진다.
자율주행 서비스를 만드는 모빌아이의 암논 샤슈아 창업자는 CES 현장에서 “자율주행 시대와 함께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obility as a Service)가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은 점차 당연한 기술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이 역시 우리 일상에서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생태계가 갖춰져야 한다.
‘에어택시가 과연 현실화될 수 있겠나’라는 의문도 많다. 헬리콥터를 비롯해 하늘을 통한 이동은 언제나 비쌌고, 이는 응급상황이나 부유층들의 전유물로 비치기도 한다. 또한, 그 편리함 만큼이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기도 하다. 소음이나 이착륙 인프라 역시 그동안 이 이동수단의 대중화를 꿈도 꾸지 못하게 했던 장애물이다.
현대자동차의 PBV 발표. 모빌리티기 서비스 형태를 띄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술은 이 문제들을 풀어가고 있고, 그 답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오는 듯하다. CES는 여전히 그 기술을 증명하는 이벤트지만 동시에 완성 단계의 기술이 서비스로 만들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논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에어택시의 대중화는 단순히 특정 계층을 위한 고가의 이동수단이 아니라 택시 수준으로 부담 없이 일상적으로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을 목표로 한다. 세상에 없던 신기함에 놀랄 일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더는 전시회가 새롭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다. 적어도 모빌리티에 대해서는 새로움을 넘어 꿈꾸던 미래 기술들이 비로소 ‘비즈니스’의 옷을 입으며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