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원격근무, 회사를 떠나 일한다는 것

 In KISA Report

원격근무, 회사를 떠나 일한다는 것

최호섭 ([email protected])

디지털 칼럼니스트

지난 3월 17일 실리콘밸리에 3주간의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워낙 갑작스러운 결정이라 혼란과 함께 전염병에 대한 걱정스러운 분위기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이 외출 금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시행하고 있고, 또 시행을 준비 중이다.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지내고 있는 이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침착해 보인다. 미국도 워낙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지고 있는 터라 대한 불안과 혼란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업무에 대한 걱정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업무의 커다란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국가들의 직원들에 대해서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출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를 본사로도 확대하는 셈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은 ‘일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분위기에 가까워 보인다.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일한다?

 

사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업무 문화는 오랫동안 흥미로운 주제였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휴가에도 제약이 없는 기업들이 많다. 뉴욕에서 지내면서 샌프란시스코의 회사 일을 하는 것은 놀랄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면서 위성 인터넷을 통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적어도 ‘출근’이라는 물리적인 조건이 업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은 업무의 상당 부분이 여러 가지 온라인 도구를 통해 이뤄진다. e메일을 비롯해 최근에는 슬랙을 비롯한 메신저가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돕는다. 클라우드는 업무 환경과 결과물을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지켜주고 수많은 사람이 협업할 수 있는 기본 틀이 된다. 각자의 컴퓨터가 곧 사무실이고, 협업 공간인 셈이다.

 

물론 이 기업들도 모두 출근과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한 요소다. 다만 이러한 부분들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중 요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원격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다 보니 자리의 공백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견을 듣는 방법은 충분히 여러 가지 있기 때문이다. 꼭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면 화상 통화로 앉은 자리에서 즉각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이처럼 원격 커뮤니케이션의 문화가 자리 잡은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외출금지령에도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큰 부담이 없다. ‘하던 대로’하면 된다. 물론 출근을 하지 못하는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구글은 크롬 브라우저의 업데이트 일정을 조금 미뤘다. 예정됐던 제품이나 서비스 발표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이 상황이 장기적으로 진정되지 않는다면 그 영향은 곳곳에서 드러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의 재택근무는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는 사람이 줄었고,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재택근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기업은 늘어나고 있다. 돌아가며 일부 직원들만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이 더 앞서는 분위기가 눈에 띈다. 기업도, 임직원들도 경험이 없어서다. 직원들은 좋다는 반응만큼이나 ‘더 힘들다’, ‘어딘가 눈치가 보인다’, ‘업무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다’ 등등 어려움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관리자들도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근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원격 업무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그럴까?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조건이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네트워크 속도는 물론이고 이미 기업들이 많은 부분을 클라우드로 바꿔 놓고 있고, e메일과 가상 데스크톱, 모바일 그룹웨어, 협업 도구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런 업무 도구를 바탕으로 기존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아직도 대면보고는 중요한 절차고, 임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하는 능력은 승진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심지어 전자결재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정작 결재 과정은 서류철에 문서를 뽑아들고 상급자의 책상으로 가야 하는 ‘기본예절’을 중요시하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물론 재택근무를 하는 처지도 그리 녹록한 건 아니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피로를 호소하기도 하고, 메신저가 ‘부재중’ 상태로 바뀌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재택근무에 대한 조언이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기업이 사실상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두고 혼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기존 업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를 두고 불안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과정이다.

 

공간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법, 문화의 도입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이고, ’업무 성과’다. 직원들의 생산성을 끌어내려면 어떤 투자도 감내하는 것이 요즘 기업들의 분위기다. 우리에게 그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가치는 그동안 ‘성실성’으로 대변됐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한 대학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도구의 초점이 다른 것에 놀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존 학사 관리 프로그램들의 기능적인 초점이 해당 학생이 강의 영상을 몇 분 봤는지, 어떤 영상에는 참여하지 않았는지에 맞춰져 있었는데 해외 솔루션을 살펴보니 그런 확인 기능이 아예 없더라는 것이다. 학사 관리는 정말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강의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언제든 지난 강의를 반복해서 보면서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어야 하고, 이는 곧 비대면 수업을 둔 문화의 변화라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상호신뢰에서 출발한다. 2013년 야후는 흐름과 반대로 재택근무를 금지했던 바 있다. 당시 CEO였던 마리사 메이어는 “혁신을 위해서”라고 이유를 붙였지만 사실상 외부의 시선은 야후의 업무 환경과 분위기에 쏠렸다. 일부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용해 일에 집중하지 않고, 심지어 부업을 하는 사례가 언급되기도 했다. 메신저가 자동으로 부재중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공유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직원들의 업무 윤리에 대한 문제로 비칠 수 있지만 돌아보면 그 이면에는 야후의 업무 도구들이 스스로 업무 문화를 효과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어볼 수도 있다.

 

근래 스마트워크, 협업 도구 등을 적용하는 기업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문화의 도입’이라는 말이다. 물리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화상회의용 카메라, 마이크, 솔루션이지만 실제 기업이 사는 가치는 새로운 업무 환경을 꾸릴 수 있는 기업 문화라는 이야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오피스365를 내놓았을 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월 단위로 요금을 받겠다는 구독형 서비스일 뿐이었다. 한 번에 수 십만 원을 내고 사는 게 부담스러우니 할부를 내는 것처럼 월 요금 체계를 도입해 불법 복제를 막으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큰 맥락은 “우리가 팔려는 것은 응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문화”라는 말이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365뿐 아니라 구글 G 스위트를 비롯해 기업의 원격, 협업 도구들의 핵심적인 가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도 이 솔루션들을 받아들이면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업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설명을 붙이는 경우들이 많다. 이 협업 도구들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는 팔기 위한 대표적인 상품이긴 하지만 스스로 그 커다란 조직이 혁신성을 유지하면서 원활하게 운영되게 하는 핵심 문화를 반영한 서비스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가 ‘줌(Zoom)’이다. 줌은 한 마디로 설명하면 영상 회의 시스템이다. 카메라와 화면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원격 회의를 가능하게 한다. 비슷한 앱은 셀 수 없이 많다. 줌의 인기 비결은 압도적인 화질과 음질, 그리고 화상 회의에서 신경 쓰이는 배경 처리 등 사소한 데에 있다. 한 마디로 더 자유로우면서 더 현실성 넘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화상회의 시스템의 가장 큰 의미는 교감에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메신저와 전화, 그리고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의 분위기, 뉘앙스는 전혀 다르다.

 

폴리콤이나 시스코로 대표되는 기업용 화상회의 시스템은 점점 고도화되면서 상대방이 화면에서 보이는 크기부터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선 처리를 하고 소리 역시 공간을 적절히 담아내는 등 같은 공간 안에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만 비싸다는 약점이 있다. 그 질을 조금 낮춰 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많았고, 줌은 딱 그 부분에서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 사실상 사람들이 필요에 맞는 서비스를 찾으면서 성장한 사례가 줌인 셈이다.

 

문화와 정서의 공감, 스킨십 중심 성실성의 시대 저물까

 

결국 원격근무의 가치는 서비스나 제품이 아니라 문화와 정서의 공감에서 이뤄진다. 업무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이제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야만 머리를 맞댈 수 있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기업이 깨닫고 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업무 방법에 대한 공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 그리고 느낌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업무 평가 기준과 이에 맞춘 인사 평가까지 모든 요소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 업무환경의 변화, 새로운 문화의 도입이 그만큼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기도 하다.

 

경험이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최근의 흐름을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업무 환경을 도입할 시험대로 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업무 도구가 아니라 업무 문화인데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경영진의 의지, 특정 부서의 노력만이 아니라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앞서야 한다. 물론 원격근무가 업무 환경의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 많은 기업이 출근 문화와 사무실을 없앴을 것이다. 원격근무의 필요성은 출퇴근의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공감이 필요하다.

 

원격근무가 일상화된 기업들은 집에서, 카페에서, 차 안에서 일한다는 건 단순히 공간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원격 근무가 자유롭고 멋있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언제 어디에서도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네트워크의 족쇄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격 미팅이 늘어나는 요즘의 분위기가 반갑다. 외출 준비와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 시간에 자료나 미팅 준비를 더 밀도 있게 할 수 있고, 회의 자체도 30분이면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왕복하는 시간과 비용을 없애고 내용은 더 좋아진 데다가, 이참에 해외에 있는 관계자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늘어났다. 적어도 미팅 한 건에 3시간 이상을 아낄 수 있다. 대신 효율은 더 높아지고 집중력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문서나 통화로 대화하다 보니 얼굴을 보고 분위기로 대충 넘어가는 일도 없다. 커뮤니케이션은 더 또렷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 경험은 이미 많은 기업이 해 왔다. 온라인을 통한 묘한 공백을 줄이는 노력은 기술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어쨌든 원격근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동경의 대상이다. 그동안 그 판타지는 스마트워크나 유비쿼터스를 비롯한 기술적인 용어들로 포장되어 기업들의 과제 중 하나가 되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기업은 대면으로 보고를 받길 원하고,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것은 성실성이라는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다.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정적으로 회의하는 모습은 흐뭇한 풍경으로 꼽히는 하나의 클리셰고, 함께 밥이라도 한 번 먹어야 일이 시작되는 문화는 ‘정’으로 대변된다.

 

늘 눈앞에 보이는 ‘성실함’이라는 가치가 모든 것을 대변하기는 어렵다. 엉덩이 무거운 게 미덕은 아니다. 과거에는 한 자리에서만 업무를 할 수 있었고, 옆에 앉아 있어야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이 가능하므로 어쩔 수 없이 대면의 중요도가 높았을 뿐이다.

 

분명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와 교감이 이제껏 우리의 업무 환경을 이끌어 온 것은 분명하지만 생산성과 업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업무 환경이 어우러져 또다시 새로운 우리의 일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본 원고는 KISA Report에서 발췌된 것으로 한국인터넷진흥원 홈페이지(https://www.kisa.or.kr/public/library/report_List.jsp)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KISA Report에 실린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므로,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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