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 가상현실 2020, 비대면 세상에서 희망을 찾다
가상현실 2020, 비대면 세상에서 희망을 찾다
최필식 ([email protected])
기술작가
만약 IT 상식을 따지는 퀴즈 쇼에 가상현실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된 시기를 고르는 문제가 출제된다면 2020년은 정답으로 처리해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큰 해다. 언제나 가능성과 시장성을 한 단계 낮춰 보던 가상현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가상현실을 다시 보게 만든 그 일이 결코 반가운 일일 수는 없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안전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비대면 기술이 절실해 지면서 영상 시스템과 함께 가상현실을 더욱 눈여겨보게 된 것이라 서다.
이러한 사정 때문이기는 해도 어쨌거나 국내 가상현실은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볼 만한 변화들이 적지 않다. 더 많은 투자가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도 쏟아졌다. 하지만 비대면 산업의 육성을 위해 가상현실에 대한 긴박한 투자와 정책의 이면에는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고민과 향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점검이 빠진 채 이뤄지는 문제도 적지 않다. KISA 집필진과 함께 올해 가상현실 분야를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논의해야 할 방향성도 살펴본다.
발제 | 2020년 가상현실 분야에 대한 요약
가상현실은 올해 코로나19로 가장 관심을 받은 분야로 지난해의 가상현실 산업을 비교해 보면 국내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가상현실에 큰 기대치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지난해 5G 상용화를 위한 킬러 서비스의 한 분야로써 가상현실을 지목하고 이동통신 3사에 5G 기반 가상현실 산업 육성을 요구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이통사에 대한 집중 현상이 줄어드는 현상이 커졌고 상대적으로 콘텐츠 관련 기관에 시장을 주도하고 산업을 육성하도록 지원책과 정책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물론 이동통신 3사는 자체적으로 가상현실 관련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입자에게 가상현실 헤드셋을 보급하는 노력은 이어나가고 있다. 5G 통신 소비를 늘리는 데 효과적으로 알려진 몰입형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이동통신사가 통신 소비형 콘텐츠만 집중하는 까닭에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애플리케이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발 빠르게 실감 콘텐츠 활성화 실행 계획 공개하고 예산을 투입했다. 샌드박스 규제 해결 및 장기 발전 로드맵도 내놓았다. 다만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기술의 필요성에 따라 추진된 것이어서 올해 국내 가상현실 관련 핵심 기술, 산업,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 기술적인 보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다.
특히 가상현실에 대한 기본 정의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공유가 선행되지 않고 당장 구현 가능한 실적 위주의 사업이 진행되는 문제가 많다. 물리적 현실을 복제하거나 완전히 다른 형태로서 구축해 인간의 감각을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기술인 가상현실의 기본에 충실하게 접근하는 육성 사업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시장을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이 부재한 상황이다. 가상 현실은 데이터 처리와 인공 지능, 원격 제어 등 다른 분야와 융합되어야 더 큰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산업이지만, 이에 관한 연구나 사업 추진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대중화된 가상현실 기반 소셜 공간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적이면서 기술적 문제들을 예측하고 논의하는 기회는 거의 얻지 못한 한 해였다.
토론 | 기존 가상현실 정책의 문제
- 우리나라에서 이동통신사가 가상현실 기술 자체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부수적으로 망 사용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 창출을 기대하면서 네트워크 사용 비용 쪽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기존 망을 활용을 위한 수단으로 가상현실 산업을 논하면서 실제 어떻게 가상현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는 상황이다.
- 가상현실의 핵심이 디지털 기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컴퓨팅 파워가 가장 중요함에도 국내에서는 이러한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단순히 네트워크의 전송 성능이 문제가 아니다. 이통사의 가상현실 서비스는 망 속도를 중점으로 논하고 있는데, 가상공간의 시뮬레이션과 전송된 데이터 처리를 위한 컴퓨팅 파워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해서다. 결국 이통사의 처리 능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이를 강조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점차 콘텐츠 방향에 대한 개발자들의 고민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 가상현실 관련해 지난 20년 동안 지속해서 논의가 있었으나 우리 사회에서 현재 가상현실을 중요 산업으로 보고 있는지 인식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정책 관계자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가상현실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기술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일이 우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많다.
(참고 : 비대면 이슈가 커지면서 가상현실에 대한 예산이 증가했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25년까지 실감 콘텐츠 전문 기업 150개 육성, 3조 원 규모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과기부가 전적으로 방향성과 예산에 있어서 주도하고 있다)
제언 | 국내 가상현실 분야에 대한 재점검 필요
이동통신사가 주축을 이룬 지난해와 비교할 때 올해 정부 기관의 가상현실 정책과 예산의 방향이 바뀌고 장기 로드맵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토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수십 년 동안 가상현실에 대해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낮은 수준의 산업이 구축되고 있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비대면 분야 육성을 위해 가상현실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가상현실 산업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져 장기적으로 국내 및 외국 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여 건 조성을 위해선 더 많은 요소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 가상현실 산업의 명확한 방향 설정
사실 비대면 기술에 대한 접근보다 가상현실 산업 전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이 더 아쉬운 현실이지만, 일단 비대면이라는 특수성을 기반으로 물꼬부터 트는 것이 가상현실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최근 국내 가상현실 관련 정책이 비대면을 위한 기술 확보 및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 중이긴 하나 이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적용할 분야나 범위를 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상현실을 적용할 수 있는 비대면 분야의 범위가 넓은 데다 모든 분야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상현실이 비대면 기술로써 활용 가능한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적용이 시급한 분야를 찾아 제도를 정비하고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개발 같은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것이 보다 빨리 관련 기술과 시장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가상현실은 다양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분야다. 가상현실의 구현은 어렵지 않으나 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임상적 불편을 확인하고, 작업 수행의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 물론, 이미 가상현실을 경험했던 이들을 통해 그 효과나 임상적 문제는 조금씩 알려졌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 특히 비대면을 위해 가상현실을 도입한 작업장에서 이용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중요한 참고 자료를 준비할 수 있다.
- 소비자 플랫폼 점검 및 확대
지금은 정부가 비대면을 앞세워 가상현실 정책을 추진하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가상현실이 거대 민간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가상현실은 모바일 시대 이후 더 많은 데이터의 처리를 통해 구축되는 디지털 세계를 위한 차세대 컴퓨팅 인터페이스지만, 지금 시장을 뚜렷하게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페이스북 이외의 응용 프로그램 제조사에 제한된 상황이다.
따라서 데이터로 구축되는 차세대 컴퓨팅 세계에 필요한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소비자 플랫폼 점검을 진행해야 한다. 이미 페이스북은 가상현실과 증강 현실 등 확장 현실(XR)을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으로 규정하고 필요한 기술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품, 소비자 플랫폼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밸브는 가상현실 게임 부문에 특화된 플랫폼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외국 IT 기업의 활동에 비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주도하는 기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 기업의 가능성을 가진 곳도 전무하다. 국내 대형 포털이나 IT 제품 제조사도 시장의 성숙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가상현실 서비스나 앱이 개발된다고 하더라고 이를 유통하거나 배포할 수 있는 채널이 없다. 특히 정부 기관의 예산이 투입된 가상현실 관련 응용 프로그램들이 구축조차 쉽지 않은 특정 플랫폼에서만 작동하게끔 설계한 데다 배포할 수 있는 일관된 경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이용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조차 없다. 민간 플랫폼이든 정부 구축 플랫폼이든 적어도 이용자를 위한 기본 플랫폼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 설계해야 한다.
- 다른 기술과 융합 장려
가상현실은 그 자체만으로 완성되는 기술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처럼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찾는 산업도 아니다. 가상현실은 다른 분야의 기술과 융합을 통해서 더 완성도를 높이고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가상현실에서도 인공 지능은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게임 같은 목적이 뚜렷한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면 가상현실에서 가상 또는 실제처럼 보이는 시뮬레이션 된 공간이나 사람 및 사물 같은 개체는 사람이 하나하나 만들어 넣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공간이나 개체는 인공 지능을 통해 학습된 모델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고 이를 가상현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가상현실과 인공 지능 모델의 결합은 별개로 여겨선 안 된다. 특히 가상현실 내에서 실제 사람의 말소리에 따라 입 모양이 변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소리가 공간의 사물에 부딪혀 퍼지는 물리적 영향 등 인공 지능을 활용해 구현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인공 지능 외에도 로보틱스의 결합도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드론이나 로봇 등 5G망으로 접속된 장치를 원격으로 제어할 때 가상현실을 결합하면 공간을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 정밀 제어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격 제어를 활용해 장거리 시설을 다양한 장치로 더욱더 빠르게 점검할 수 있고, 위험한 공장 내부 시설이나 위험 지역을 순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그 자체의 기술이 아닌 다른 분야와 결합함으로써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기술 융합은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러한 창의적 융합을 지원하는 정책을 다듬어야만 산업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추가 발제 | 향후 가상현실의 사이버 범죄 예측과 대비
가상현실 기반의 소셜 서비스는 기존 소셜 미디어와 다른 점이 있다. 모든 행동이 공간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상현실 소셜 서비스는 마치 실제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현실의 테마파크처럼 다양한 공간 안에서 다른 이용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콘텐츠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국내에서 SK텔레콤이 서비스 중인 버추얼 소셜 월드나 레크 룸, VR 챗, 빅 스크린, 갤럭시티, 스패시얼, 그로브, 멀티버스 등 다양한 외국 소셜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
소셜 서비스 대부분은 현재 가상의 아바타로 참여하지만, 일부 서비스는 이용자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거나 준비 중이다. 그런데 가상현실 소셜 서비스는 기존 소셜 미디어와 달리 공간에서 이용자가 직접 대면한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면서 여러 사람이 대면하는 것이어서 디지털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실제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가장 큰 우려는 가상공간에서 대면을 이루더라도 실제 신원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다른 이용자를 사칭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으로 이를 예측하고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규제를 예상해 봐야 한다.
- 인증 단계에서 신원 확인
가장 간단하게 생각했을 때, 이러한 문제점 대응을 위해서는 진입 앞 단계에 인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게이트웨이를 두고 인증하는 방식으로 신원 인증이 가능할 수는 있다. 사업자 단위에서 회원을 대상으로 가능할 수는 있으나 글로벌하게 누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인증하느냐에 대한 부분은 로컬 단위로 다를 것으로 보인다.
- 디지털 공간에서 사칭에 대한 처벌 조항
온라인에서 사칭했을 때, 처벌이 가능한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온라인 사칭도 실제 사칭에 해당하여 처벌이 가능한 법이 있다.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온라인 사칭이 이루어졌을 때, 처벌할 수 있는 법이 국내법상으로는 없다. 온라인 사칭으로 범죄에 연루되었을 때는 관련 법률을 적용하여 처벌이 가능할 수 있지만, 단순 사칭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