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게임 구독,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 끌어안는 플랫폼의 역할과 기대
게임 구독,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 끌어안는 플랫폼의 역할과 기대
최호섭 ([email protected])
디지털 칼럼니스트
콘텐츠의 소비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대부분 이유는 유통, 그리고 소비 방법의 변화에 있다. CD로 듣던 음악, DVD로 보던 영화가 온라인으로 옮겨지던 것이 초기의 온라인 스트리밍이었다면 최근의 형태는 구매보다 빌려서 보는 형태를 넘어, 구독 형태의 회원제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콘텐츠는 유형의 미디어보다 무형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분위기의 변화도 있다. 적어도 온라인이 불법 복제의 수단을 넘어서면서 인터넷과 콘텐츠는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소비자로서는 더 많은 콘텐츠를 가격으로 저렴하게, 그리고 선택의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측면에서 스트리밍을 선호하게 됐고, 공급자로서는 늘어나고 치열해진 시장에서 선택을 쉽게 하려면 이용자들의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더 많은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그리고 구독 형태로 넘어가고 있다.
최근 게임이 보여주는 구독 모델은 매우 흥미롭다. 게임 그 자체로도 이전과 다른 형태의 유통 방법이지만 구독이라는 측면에서도 ‘무엇을 구독하나’에 대한 관점으로 바라볼 만한 요소가 있다. 특히 게임 업계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풀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구독이 눈에 띈다.
애플 아케이드, 모바일 게임의 게임 체인저
애플은 모바일 게임 시장의 변질을 짚었다. 게임이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넘어오면서 게임 회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먼저 시작된 변화는 가격이었다. 수십 달러씩 받던 게임이 1~2달러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AAA급 PC, 콘솔 게임에 비하면 초기 모바일 게임은 부족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1달러에 파는 게 이해되지 않는 게임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스마트폰 게임 시장은 규모로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앵그리버드를 만든 로비오, 캔디 크러시 사가의 킹스튜디오는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았고,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게임 회사뿐 아니라 IP를 가진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사업이 확장됐다. 이게 모두 전 세계의 1달러가 모여서 만들어진 일이다.
심지어 여기에 광고 플랫폼이 붙으면서 이용자에게 직접 돈을 받지 않아도 수익이 나는 마법이 게임 시장에서 벌어졌다. 무료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절정은 앱 내 결제의 확장이고, 이는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PC의 온라인 게임처럼 게임 자체는 무료지만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으로 조금 더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다.
이는 꽤 합리적인 방법이다. 이용자로서도 한 번에 비싼 앱 가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재미가 있다면 이후에 아이템을 구입하면서 개발사에 수익을 제공하고, 그만큼 대우받으면서 더 빠르고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꼭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각 플랫폼의 앱 장터의 무료 게임 리스트에는 온갖 게임들이 무료 아닌 무료 게임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결제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거나, 아니면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으면 사실상 진행이 어려운 게임들이 쏟아졌다. ‘과연 이 게임들이 무료인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애플도 이 문제에 대해서 꽤 오래 고민을 해 왔다. 조금은 소극적이지만 무료 게임의 구매 버튼을 ‘무료’에서 ‘얻기’로 바꾸기도 했다. 사실상 무료가 아니라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어쨌든 이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보다 무분별한 아이템 패키지 판매, 도박 수준의 럭키박스 등으로 이어졌고, 잊을 만하면 부모의 신용카드로 수백만 원을 결제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실제로도 게임 앱 내 구매로 한 달에 수 십만 원씩 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름의 ‘이용료’라는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경제적인 가치를 두고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게임의 흐름이 그동안 게임이 추구해 온 본질과는 꽤 다른 게임들을 너무 많이 나았고, 이전 패키지 형태의 게임 구매를 원하는 이들은 딱히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없었다. 사실 모바일 게임에서 한 번에 결제하는 패키지 게임은 이제 더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애플이 주목한 것은 이 묘한 불균형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애플 아케이드는 구독 형태로 게임 구매와 아이템 구매, 시나리오 구매 등 일체의 추가 결제를 없앴다. 그리고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구독료를 통한 수익을 보장한다. 이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은 현재 꼬여 있는 모바일 패키지 게임 시장을 풀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애플만이 할 수 있는 플랫폼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애플 아케이드의 성공은 결국 이 안에 얼마나 좋은 게임들이 많이 참여하느냐, 그리고 그 게임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구독자를 늘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애플 아케이드의 선순환이 이뤄지면 모바일 게임의 완전히 새로운 유통 형태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업계의 문제를 플랫폼으로 풀어내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높이 살 만하다.
지포스 나우, 스타디아… 게임기 없는 게임 플랫폼
지난 8월 말 엔비디아는 LG유플러스와 함께 콘솔이나 PC 게임을 클라우드로 이용할 수 있는 ‘엔비디아 지포스 나우(Nvidia Geforce Now)’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 마디로 스마트폰에서 인터넷을 통해 플레이 스테이션4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CPU나 GPU, 저장장치 등 게임을 운영하는 모든 시스템은 엔비디아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원격으로 이뤄지고, 그 결과물, 즉 화면과 소리는 영상처럼 스트리밍으로 스마트폰이나 PC 등 이용자의 클라이언트 기기에 전달된다. 클라이언트 기기는 영상을 풀어놓고, 또 게임 컨트롤러의 조작을 다시 원격의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한다.
PC와 스마트폰 등 클라이언트 기기는 운영체제나 하드웨어 성능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른 인터넷 속도만 확보되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버 응답 속도인데, 5G는 현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네트워크 기술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클라우드 컴퓨팅과 흐름을 같이 하는 기술이다. 게임을 사서 내 PC나 게임기로 구동하는 것이 아니라 원격으로 제어하고 그 결과물만 화면으로 받아보는 것이다. 서비스 측면으로는 마치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처럼 게임과 인프라를 모두 빌려서 쓰는 것이다.
구글도 올 11월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초 발표했던 ‘스타디아(Stadia)’다. 하드웨어는 게임기 본체 대신 스트리밍을 맡는 크롬캐스트 울트라와 전용 게임 컨트롤러 뿐이지만 지포스 나우와 마찬가지로 클라우드와 스트리밍으로 고성능이 필요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게임 시장의 장벽 중 하나는 바로 기기였다. 좋은 기기가 있어야 더 화려한 그래픽, 더 방대한 시나리오를 표현할 수 있는데 어느 시대든 이 조건을 만족하는 하드웨어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콘솔 게임기 시장은 하드웨어를 원가 이하로 팔고 이후의 게임 판매를 통해 수익을 보전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PC는 상대적으로 이런 지원을 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컴퓨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게임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 높은 컴퓨팅 파워보다 단순한 그래픽으로 승부하는 캐주얼 게임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CPU에 내장된 그래픽 코어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쏟아진 것이다.
물론 엄청난 폴리곤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그래픽이 게임 전부는 하드웨어 제약 때문에 게임 발전에 제약이 생기고 게임의 장르가 치중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이를 직간접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게임 하드웨어 구독’은 이 스트리밍 기반 게임 기술에 가장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다.
공급과 소비의 다양화에 기대
AAA 게임을 만들고 유통하는 기업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스팀을 비롯한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의 인기와 영향력이 커지긴 하지만 작품 실패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게임 소비 행태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방법으로의 구독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대표적인 것이 EA와 마이크로소프트다. 이 회사들은 자체 게임 유통망을 통해 구독 형태의 게임을 늘려가고 있다. 갓 나온 AAA 게임도 과감하게 구독으로 풀어 놓는다 이용자들이 게임을 이용하는 대가를 나누어서 받는 것으로 소비의 부담을 줄이고 이용자를 늘리는 구독은 게임 하나하나의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의 하나다.
패키지 게임 시장의 위기는 글로벌 기업들뿐 아니라 손노리나 소프트맥스 등 우리나라 게임 1세대 개발사들이 오래전부터 호소해 왔던 부분이다. 하지만 시장은 한 번에 모든 것을 구매해야 하는 소비에 부담이 있었고, 아이템 구매를 통한 진행의 가속에 더 큰 가치를 느끼고 있다.
게임은 잠깐의 유행으로 번지고 있고, 수 십억 원씩 들여 개발한 게임 대부분은 첫 한 달만 반짝 유행하고, 이후에는 10%도 되지 않는 충성 이용자들을 통해 운영되다가 온라인 서버의 전원을 내리는 것으로 문을 닫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될 수 변화 역시 오랜 시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있다. 이런 형태의 변화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개발자와 게이머들이 다른 형태의 게임을 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풀어내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게임 구독은 당연한 흐름이다. 게임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제작비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패키지를 기다려서 구매하는 이용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게임 패키지를 뜯는 것부터, 설치 중에 매뉴얼을 뒤적거리는 낭만은 이제 40대 이상의 올드 게이머들이나 기억하는 일이 되고 있다.
게임 유통 플랫폼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제까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 그 어떤 콘텐츠 유통 형태와도 다른 기술적, 문화적, 유통적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화려한 게임 무대의 뒷배경은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