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5G는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그려냈고, 앞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
5G는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그려냈고, 앞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
최호섭 ([email protected])
디지털 칼럼니스트
근래 가장 아쉬움을 사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5G, 5세대 이동통신이다. 2019년 4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새로운 통신망을 구축하고,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국가가 됐다. 최초 서비 스와 안정성을 두고 국가 간, 기업 간 눈치 싸움은 치열했고 결국 우리나라 통신 3사는 다소 기습적이지만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5G 끄고 써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5세대 이동통신
하지만 현재 5G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지난해 시장조사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가 5G 이용자 3만 3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5G에 만족스럽다는 반응은 30% 수준에 머물렀다. 먼저 커버리지가 좁아서 연결되지 않는 지역이 너무 많았고, 기지국이 촘촘히 깔리지 않아 데이터 속도나 연결 품질도 들쑥날쑥하다는 반응이었다.
초기에는 요금제도 비쌌을 뿐 아니라 스마트폰 단말기 부담도 컸다. 또한 이동통신사들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내면서 5G 단말기는 꼭 5G로만 가입해서 써야 하는 규칙을 정했다. 국내에서는 아이폰을 제외한 안드로이드폰이 사실상 삼성전자와 LG전자밖에 선택지가 없었고, 대부분의 주력 제품이 5G였기 때문에 가입자들로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높은 통신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조금 비싸더라도 그 통신망이, 서비스가 가치를 주었다면 기술을 먼저 만나는 만족도와 앞으로의 기대감이 컸겠지만, 실제 서비스는 LTE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고로는 VR을 비롯해 새로운 영상 미디어와 클라우드 게임을 비롯해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비쳤던 자율주행을 비롯한 갖가지 원격 서비스가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LTE나 무선랜처럼 하나의 통신망이 뚫린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제공되던 몇 가지 서비스는 흥미 삼아 한두 번 해보고 마는 것이 현실이었다.
결국 5G는 가입자들에게 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잘 터지지도 않는데, 배터리까지 많이 먹는 그야말로 천덕꾸러기가 됐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5G를 끄고 LTE만 쓰거나, 위약금을 물고 LTE로 넘어가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2011년 LTE가 처음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의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과연 5G에 대한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5G는 어디까지 왔나
여전히 5G는 미래 산업에 가장 중요한 기반 기술이다. 인공지능이나 데이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입에 오르내리는 모든 기술의 기반은 강력한 컴퓨팅 파워에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기술은 각 기기, 그러니까 클라이언트의 처리량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연결성이 중요시된다.
그동안의 인터넷 기술은 데이터의 전송량을 늘리는 대역폭에 힘이 실렸다면 5G는 대역폭뿐 아니라 응답 속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네트워크 기술이다. 개개인이 이용하는 단말기나 기기, 설비 등 클라이언트뿐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다른 구성원들과의 연결,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클라우드 인프라와 엣지 컴퓨팅 등을 통해 하나의 문제를 실시간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심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5G 네트워크 기반의 자율 주행이다. 현재 자율주행은 상당 부분을 차량 자체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해상도 지도와 센서 정보를 바탕으로 주변을 살피며 운행하는 것을 네트워크에 전부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럽게 일어난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데, 당장 차량 주변의 정보 처리에는 차량 내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변 차량의 사고나 재해, 재난 등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1천분의 1초 수준의 네트워크 응답 속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자율 주행으로 달리는 차량의 경로를 도시 전체로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이를 속도나 양으로 음영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네트워크 기술이 바로 5G다. 동시에 자율주행은 5G의 진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자율주행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소되어야 하고,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사회적으로, 법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5G 역시 서서히 기술이 다져지면서 성장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통신의 역할과 의미 되짚어봐야
그렇다면 5G는 쓸모가 없는 과한 기술일까? 그렇지는 않다. 도로가 자동차부터 주거부터 물류, 관광 등 여러 산업의 토대가 되었듯이 통신은 데이터가 오가며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다만 네트워크의 공급과 수요가 늘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3년 국내에 3세대 이동통신인 WCDMA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새 통신망은 엄청난 고속 네트워크였고, 이를 통해 비로소 인터넷이 집과 사무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 WCDMA를 이용한 통신비용은 매우 비쌌고,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영상 통화가 전부였다. 통신사들과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영상 통화를 새로운 트렌드로 밀고 싶어 했지만, 썩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WCDMA 자체가 막 깔리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품질도 좋지 않아서 전화 통화조차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아이폰이라는 새 주인을 만났다. 그동안 비싸서 못 쓰던 인터넷 요금을 현실화하되, 적절한 요금 체계를 잡고 훌륭한 하드웨어와 앱들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설계하면서 통신사들을 끊임없이 설득했고, 통신사들 역시 만들어 놓고 전화 외에 잘 쓰이지 않던 새 통신망을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라는 판단을 하면서 진짜 WCDMA, 3세대 이동통신의 시대가 갑자기 열려버린 것이다.
이러한 아이폰 열풍은 전 세계로 번졌고, 여러 나라가 스마트폰을 통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 뒤에는 아직 쓸모를 찾지 못했던 네트워크가 있었고, 누군가는 이를 이용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플랫폼 비즈니스를 꿈꾸게 된 것이다. 그 꿈의 결과물이 스마트폰이었고, 카카오톡이고, 배달의민족이 된 셈이다.
이렇듯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의 급격한 수요는 WCDMA 네트워크가 버텨낼 수 없었다. 4세대 이동통신, LTE에 대한 수요는 그렇게 시작됐고, 폭발하는 통신 대역폭을 감당하기 위한 효과적인 네트워크라는 명확한 목적이 더해졌다. 그렇게 LTE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Long Term Evolution이라는 이름처럼 단번에 모든 기술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단계적 표준을 바탕으로 서서히 주파수 대역을 늘리고, VoLTE 같은 서비스를 얹고, 안테나 기술을 더하면서 지금의 LTE 형태로 발전해왔다.
그 사이에 모바일은 네트워크와 반도체의 발전을 등에 입고 IT 기술의 중심이 됐다.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손안에서 일어났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산업으로 번져 나갔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없었고, 네트워크의 지향점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의 기본 목적에 대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그 안에서 필요한 기술들이 새로운 형태의 통신망이라는 의미를 품은 차세대 네트워크 NR(New Radio)라는 별칭과 함께 5G로 고민된 것이다.
5G는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만들어진 통신 기술일 뿐 아니라 이제까지 언급된 자율 주행이나 사물 인터넷, 원격 의료, 가상현실 등의 환경이 전부는 아니다. 다만 이 기술들이 언제 자리를 잡을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짜 5G를 대중화시킬 기술이나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 3세대 이동통신이 처음 예상하지 못했던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불러왔던 것처럼 5세대 이동통신 역시 새로운 환경을 가져올 수 있다. 다시 통신이 새로운 기술을 낳을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5G의 핵심이다.
통신사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일본의 NTT도코모는 5G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통신사가 가입자를 연결해주는 B2C 서비스가 아니라 네트워크 위에서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가입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B2B2C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아이폰12, 악순환의 반복? 현실적인 기회
빨리 새로운 네트워크를 깔고 서비스를 시작하려는 통신사들의 욕심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통신망은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설비 산업이다. 또한 과거 2세대, 3세대 이동통신과 달리 4, 5세대 이동통신은 쓰는 주파수 종류가 많을 뿐 아니라 주파수를 다루는 방법도 늘어나게 된다. 당장 5G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밀리미터 웨이브는 이제까지 써보지 않은 28GHz 대역의 주파수를 쓰는데 이 신호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을 뿐 아니라 회절이 잘 안 되고, 튕겨나기 쉽기 때문에 기지국 설치가 더 어렵다.
망을 더 많이, 그리고 빨리 확장하려면 가입자가 늘어나야 한다. 망 가입자가 늘어나 투자금이 어느 정도 회수되고, 또한 기존 세대 네트워크의 부담이 줄어들고, 다시 망을 확장하는 방식의 순환 구조가 일어나야 한다. 4G인 LTE는 아직도 투자가 필요하고 5G 투자는 이전보다 부담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당장 5G만으로 전화 통화를 비롯한 모든 서비스를 할 수 있는 SA(Stand alone)와 밀리미터웨이브, 또 새로운 통신 기술들이 표준화를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19로 다소 정체되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기술 자체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이고, 가야 할 길도 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가입자들의 경험이다. 현재 5G에 대한 반응이 기대보다는 불만에 가까운 이유가 바로 너무 급하게 서비스를 시작했고, 가입자를 모으는 것도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다. 5G 가입자들은 망을 떠나고 싶어 하고, 신규 가입자들은 5G에 가입하지 않고 LTE에 남아 새로운 단말기를 쓰고 싶어 한다. 불만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통신 시장은 아이폰12를 통해 5G의 기대를 다시 키우고 있다. 애플은 대중화되지 않은 네트워크 기술을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5G는 상당히 빠르게 도입했고, 단가가 크게 올라감에도 새 아이폰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에서는 버라이즌을 통해 밀리미터 웨이브까지 서비스한다. 새 네트워크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기대감도 비췄다.
아이폰12는 오랜만에 교체 주기를 바탕으로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인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요가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5G 시장으로서는 커다란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또한, 애플의 플랫폼 위에서 그동안 이어져 왔던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등의 기술이 5G를 만나 더 큰 가능성을 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규격화된, 똑같은 하드웨어 아이폰이 공급되는 만큼 이를 통해 새로운 5G 관련 서비스, 앱이 등장할 가능성도 커졌다.
가입자가 늘어나는 만큼 통신사들에게도 5G에 대해 다시 설명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통신사들은 단순히 아이폰을 통해 5G 의무 가입자를 늘릴 수 있다는 점만 바라보기보다 당장 5G가 가진 의미와 현실, 그리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또다시 헛물을 켜면 5G 가입자의 증가는 더욱더 더뎌지고, 가입자들의 불만은 더 늘어나게 마련이다.
더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현실적인 요금제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련 산업에 더 많은 개방과 투자를 통해 킬러 서비스들을 찾아낼 필요도 있다. 통신사들이 5G 시대에 돈을 버는 진짜 방법은 네트워크를 플랫폼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