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WWDC 2020] 자체 반도체 도입 선언한 애플, 그리고 다음 세대의 컴퓨터
[WWDC 2020] 자체 반도체 도입 선언한 애플, 그리고 다음 세대의 컴퓨터
최호섭 ([email protected])
디지털 칼럼니스트
WWDC 2020
애플이 개발자 행사 WWDC 2020을 개최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매년 수천 명이 모이는 이 행사는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으로 열렸다. 미리 녹화해 둔 영상을 통해 키노트 발표는 매끄럽게 진행됐고, 온라인으로 이뤄졌지만,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게 긴박한 두 시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는 향후의 개발자 컨퍼런스를 비롯해 여러 발표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iOS, 화면의 재해석
전체적으로 애플이 바라보는 아이폰의 다음 방향성은 화면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사실 스마트폰에 더 많은 정보를 띄우기 위 해 그동안 재조사들이 해 온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해상도가 높고 큰 화면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물리적으로 화면의 해상도도, 크기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대신 애플은 이 안을 더 알차게 채워서 쓰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iOS14의 기본 화면에 위젯을 더할 수 있게 됐다. 기존 iOS에도 위젯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위젯의 자리가 제한적이었다. 이번 iOS14에서는 위젯을 일반 홈 화면 어디에든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한 위치의 변화뿐 아니라 이에 대해 기존 화면과 디자인을 맞추는 변화도 더해졌다. 이질감을 줄이는 것이다. 위젯 화면 변화로 아이폰의 분위기는 꽤 달라졌고, 정보 접근성도 확연히 높아졌다.
시리는 한국어를 포함한 온/오프라인 번역을 더 했고, 지식 정보의 수를 20배 늘려서 날씨 변화가 왜 생기는지, 혹은 명왕성이 행성이 맞는지 등의 자잘한 정보를 물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시리의 가장 큰 변화는 UX에 있다. 이제까지는 시리를 부르면 전체 화면이 뿌옇게 바뀌면서 시리가 귀를 기울였다. 시리는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쓰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 글자 한 글자 보여주었다.
이는 얼마나 정확하게 말을 받아쓰는지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고, 의미를 떠나 입력 정확도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새 시리는 직접 입력 내용을 받아쓰지 않는다. 대신 그 의미를 인지해 필요한 정보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먼저 시리의 입력 화면은 전체 화면을 가리는 대신 아래에 동그란 시리 표시가 뜨는 것으로 간결하게 바뀌었다. 날씨나 일정 등의 정보는 화면 위에 작은 알림 버블로 대신한다. 더 많은 정보를 보려면 알림 버블을 누르면 된다. 웹 사이트 검색 정보도 작게 제목들만 정리해 주고 상세 정보를 해당 링크를 눌러 사파리에 직접 띄우도록 했다. 주는 정보의 내용이 달라진 것보다 같은 정보를 더 간결하게 보여주는 식으로 바뀌었고, 시리가 원래 하던 일을 방해하지 않게 바뀐 것이다. 화면을 더 넓게 쓰는 방법이자, 가끔 툭툭 튀어나오는 시리의 오작동에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비슷한 변화로 전화 앱이 있다. 전화는 아이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기본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아이폰은 전화가 오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에 집중하도록 전체 화면으로 전화가 걸려왔다는 신호를 주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키보드를 입력하다가 갑자기 뜨는 전화 화면에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iOS14의 콜 스크린은 잠금 상태일 때에는 전체 화면으로 뜨지만, 아이폰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화면 위에 알림 버블을 통해 알려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간결함은 물론이고, 기존에 하던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방법이다.
화면 안에 또 다른 화면을 띄운다는 의미의 PIP(Picture in Picture)도 아이폰에 더해졌다. 넷플릭스 등 동영상을 보다가 앱을 빠져나오면 작은 화면으로 계속해서 재생되는 기능이다. 이 역시 넓어진 아이폰의 화면을 더 채워서 쓸 수 있는 UI다. 아이폰의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보안 정책이다. 애플은 보안의 기본 원칙으로 데이터를 최소화하고, 클라우드 전송 없이 기기 안에서 분석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데이터 사용의 투명성과 이용자가 직접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iOS에 이 부분들이 반영됐다. 카메라나 마이크 등 녹음 장치가 작동하면 노치에 인디케이터를 띄워서 어떤 앱이 어떤 기록 장치를 썼다고 알려준다. 앱이 사진이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어떤 부분과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제한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텍스트를 붙여넣어도 화면 위에 ‘어떤 앱에서 복사한 정보를 어디에 붙였다’고 알려준다.
맥은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먼저 새로운 맥OS는 ‘빅 서(Big Sur)’라는 펫네임을 가진다. 하지만 이 운영체제의 진짜 이름은 ‘맥OS 11’이다. 이제까지 맥은 10번째 버전을 ‘OS X’으로 브랜딩하고 X, 그러니까 10을 숫자의 의미보다 완성의 의미로 해석해서 매년 소수점 아래 버전을 올려왔다. 마지막 맥 OS X은 10.15 카탈리나였다.
직접 만드는 반도체로 전환, 프로세서 이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맥을 그려내다
새 운영체제는 디자인이 싹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화면 구성과 메뉴는 더 간결하고 플랫해졌다. 아이패드의 그것을 떠올리는 구성이다. 맥의 화면 밝기, 음량, 무선랜 등 기기를 만지는 것도 기존 메뉴 대신에 제어센터로 구성을 바꾸었다. iOS14의 위젯도 맥OS에 곧바로 적용된다. 전반적으로 맥OS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세세한 부분은 iOS와 더 많이 비슷해졌다. 일관성을 갖게 됐다는 쪽이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 새 맥OS의 의미는 프로세서의 전환이다. 애플은 2006년부터 맥에 써 온 인텔의 프로세서 대신 자체 개발하는 실리콘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메시지는 당장 인텔 맥을 100% 걷어낸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맥의 상당 부분이 자체 프로세서로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인텔 프로 세서가 필요한 영역이 남아 있고, 리거시가 중요한 전문가 시장까지 완전히 전환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애플이 맥을 위해 어떤 프로세서를 내놓을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읽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맥에 ARM 기반의 자체 프로세서가 들어가고, 특정 라인업에 인텔의 CPU와 AMD의 GPU가 병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애플이 이 프로세서 전환을 WWDC에서 공개한 이유는 바로 생태계 때문이다. 프로세서를 바꾸는 것은 실질적으로 생태계에서 앱들이 돌아가는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ARM과 인텔의 x86 시스템은 작동 구조가 완전히 다르므로 앱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애플은 이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개발도구인 ‘X코드’를 업데이트해 새로 컴파일하는 것으로 앱 환경을 맞추도록 했고,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 앱들이나 플러그인은 에뮬레이터 로제타스톤2로 해결하도록 했다.
결국 이 새로운 프로세서를 쓰는 맥이 나왔을 때 시장이 앱 때문에 혼란을 빚지 않도록 미리 앱 개발자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맥을 깜짝 이벤트로 공개할 수도 있었겠지만, 미리 개발 환경을 언급한 것은 결국 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전환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애플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환의 과정이 과거 2005년 파워PC에서 인텔 프로세서로 바꾸던 시기와 닮아 있어서 개발자들의 혼선도 줄어든다.
애플이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것은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다. 애플은 iOS를 통해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고, 그 방향성에 맞춰 프로세서 기능을 추가해 왔다. 인텔은 범용 프로세서로서의 역할은 확실하지만, 애플의 방향성을 모든 제품 라인업에서 맞춰주지는 못하고 있고, 새 프로세서의 출시 일정이 밀리면서 애플의 신제품 일정을 흐트러뜨리는 일도 있었다.
특히 애플이 플랫폼 전환의 이유로 든 것은 전력과 성능의 상관관계였는데, 이 둘을 모두 만족하게 하는 반도체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서 직접 프로세서를 만들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ARM 프로세서와 x86 프로세서의 특성이 다르고, 특정 명령어 세트와 부동소수점 연산 등 인텔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전문 분야에 대해 애플이 어느 정도까지 대응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새로운 칩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새 맥OS 빅 서의 내부 구조나 UX가 아이패드와 닮았고, 보안 체계와 샌드박스 정책을 더 예민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점 정도가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맥과 아이패드가 하나의 운영체제로 통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애플은 이미 이를 강하게 부정한 바 있다. 대신 앱 개발 환경을 합치고, 사용자 경험을 비슷하게 맞추는 식으로 플랫폼의 통합이 진행된다.
앞으로의 X코드 앱 개발 환경 역시 맥과 아이패드의 앱 개발 방법이 더 비슷해질 것이고, 하드웨어나 보안 정책, UI 등의 일관성이 생기면서 맥의 앱스토어 환경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아이패드 이용자들이 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세서의 전환은 단순히 성능 중심의 반도체 전환은 아니다. 애플에 반도체는 최적의 기기를 만들어내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이 더 드러난 셈이다. 차세대 컴퓨팅 방향성, 그리고 사용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언제든 또 새로운 프로세서를 도입할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이 그 고민을 이제 직접 할 수 있게 됐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반도체 큰 손이 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